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시르미온 전투 (문단 편집) == 진행 == 결국 상당수의 중앙군이 소집되어 이를 중심으로 하는 야전군이 조직되었고 헝가리의 남, 동, 동북 방면을 향한 3로 공격이 가해졌다.[* 각각 달마티아, 시르미움, 트란실바니아 지역에 대한 공세로 보인다.] 1167년에는 황제가 신임하던 제국 해군 총제독(Megas Doux) [[안드로니코스 콘토스테파노스]](Andronikos Kontostephanos)[* 마누일의 누이 안나 콤니니와 결혼한 [[스테파노스 콘토스테파노스]]의 아들 - 즉, 마누일의 조카였다.]를 총사령관으로 삼아 중앙군 1만 이상에 용병과 봉신군을 붙여 원정군을 편성하였다. 그 즈음 바치(Bács) 백작 데네시(Dénes - 동로마 측 기록에서는 디오니시오스Dionysios)가 이끄는, 독일계 군대가 포함된 15,000여 명의 헝가리군이 시르미움 재점령을 위해 남하하자, 제국군은 요격을 위해 재빨리 북상했다. 베오그라드에 이른 제국군은 사바강을 도하하여 멀리 헝가리군이 보이는, 도나우 강을 오른편에 둔 곳에서 진영을 갖추기 시작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